시아파와 수니파 무엇이 다른가? 이란과 사우디의 종교·정치 대립
중동의 중심국가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단순한 외교적 라이벌을 넘어서, 종교적 뿌리에서 비롯된 깊은 갈등을 안고 있다. 특히 이슬람 세계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와 소수이지만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가진 시아파의 분열은, 이 두 국가 간의 대립 구도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이란은 시아파의 종주국 역할을 자처하며 이슬람 혁명을 통해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니파의 중심지로서 이를 견제해왔다. 이 글에서는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역사적 관계와 종교 분파의 차이를 깊이 있게 살펴보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동 정세의 뿌리를 분석한다.
1.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 기원에서 갈라진 믿음
이슬람교는 본래 하나의 종교였지만, 무함마드 예언자의 사망 이후 후계자를 둘러싼 갈등으로 인해 두 분파로 나뉘었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의 후계자는 공동체가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며, 첫 칼리프로 아부 바크르를 지지했다.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통을 계승한 알리(사촌이자 사위)를 정통 후계자로 보았다.
알리가 4대 칼리프가 되었으나, 이후 암살당하고 그 후손들도 비극적으로 죽임을 당하면서 시아파는 소수파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닌, 종교적 권위와 신념 체계까지 영향을 미쳤다. 수니파는 율법 중심, 공동체 지도 체계를 중시하며, 시아파는 이맘(정통 지도자)을 통한 신비적 해석과 순혈 계승에 가치를 둔다.
2. 이란: 시아파 혁명국가의 정체성
이란은 원래 수니파 국가였으나, 16세기 사파비 왕조 시대에 시아파(이맘파, 12이맘 시아)를 국교로 삼으며 전환했다. 이후 시아파는 이란의 국가 정체성이 되었다. 특히 1979년 이슬람 혁명을 통해 팔라비 왕조를 몰아내고 호메이니가 집권하면서, 이란은 신정체제의 시아파 국가로 재편되었다.
이란은 이후 중동 전역에서 시아파 계열 무장 단체나 정당을 지원하며 ‘시아파 벨트’를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국가들과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3. 사우디아라비아: 수니파 중심의 와하브파 체제
사우디는 이슬람 2대 성지(메카, 메디나)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서, 수니파의 정통성과 지도력을 강조해왔다. 특히 와하브주의라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수니파 해석을 국가의 공식 종교로 채택했으며, 이를 통해 이슬람 내부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이러한 종교 체제는 이란의 시아파 체제와 극명히 대조되며, 사우디는 이를 이슬람의 ‘위협’으로 간주한다. 이 때문에 중동 내 시아파 확장 세력에 대해 군사적, 경제적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절대군주제 국가(정교일치)로, 정치, 종교, 행정의 모든 권력이 국왕과 왕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4. 이란-사우디 대리전쟁: 예멘, 시리아, 레바논
이란과 사우디의 갈등은 실제 전쟁보다는 대리전을 통한 간접 충돌로 이어져왔다.
- 예멘에서는 시아파 후티 반군을 이란이 지원, 이에 맞서 사우디가 정부군을 후원하고 있다.
- 시리아 내전에서는 이란이 아사드 정권(시아파 계열)을 지원, 사우디는 반군을 지원하며 대립 구도를 형성했다.
-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는 시아파 무장 정당으로, 사우디의 이익과 자주 충돌한다.
5. 중동 정세에서의 현재와 미래: 봉합인가, 충돌인가
최근 몇 년 사이 이란과 사우디는 관계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양국이 외교 관계를 재개하기로 하면서 일시적인 완화 기류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종교적 분열과 상이한 체제 간 대립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결국 중동의 평화와 안정은 이란과 사우디가 자신들의 종교적, 정치적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수니파 vs 시아파 차이점 비교


✅ 이란 vs 사우디아라비아 체제 비교
🔹 그럼 사우디아라비아는 왜 칼리프가 아니라 국왕이야?
- 정치 체제의 변화:
- 사우디아라비아는 1932년에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가 건국한 나라예요.
- 이때부터 전통적인 군주제(왕정) 체제로 운영되고 있어요.
→ 왕이 국가의 최고 통치자이고, 종교 지도자 역할도 어느 정도 겸함.
- 수니파지만 칼리프를 복원하지 않음:
- 사우디는 수니파(특히 와하브파) 이슬람을 따르지만, 칼리프 제도를 복원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어요.
- 대신, 국왕이 '두 성지의 수호자(쿠르안의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라는 종교적 권위를 차지함으로써 지도자로서의 정통성을 주장해요.
- 이는 종교적 권위 + 정치 권력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방식이죠.
- 와하브파와의 동맹:
- 사우디 왕가(사우드 가문)는 이슬람 근본주의인 와하브파 종교 지도자와 동맹을 맺고 정통성을 강화했어요.
- 종교는 와하브파 성직자 집단이 담당하고, 정치는 국왕이 맡는 일종의 권력 분업 구조입니다.
✅ 결론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갈등은 단순한 외교 분쟁이 아닌, 이슬람교의 뿌리 깊은 분파 갈등에서 비롯된 복합적 현상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신앙 체계, 역사적 배경, 정치적 체제가 얽혀 있는 이 문제는 중동의 모든 분쟁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본 글을 통해 그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