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과 캄보디아의 숨겨진 국경 전쟁 이야기
동남아시아의 평화로운 풍경 너머, 조용히 이어져 온 국경 분쟁이 있습니다.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 우뚝 솟은 절벽 위에 위치한 유서 깊은 프레아 비히어 사원(Preah Vihear Temple). 이 사원은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두 나라 간의 민족 감정과 외교적 긴장이 얽힌 상징물이 되었습니다.
✦ 분쟁의 중심, 프레아 비히어 사원이란?
프레아 비히어 사원(Preah Vihear)은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 지대, 당그레크 산맥(해발 약 525m)에 자리 잡은 힌두교 시바 신을 위한 크메르 제국 시대의 산사원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2008년 등재)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 프레아 비히어 사원은 9세기 말부터 12세기 초까지 약 6세기에 걸쳐 건립되었고, 크메르 제국의 종교적·정신적 유산과 건축기술이 집약되어 있다. 일반적인 크메르 사원이 동쪽을 방향으로 짓는 것과 달리, 이 사원은 북쪽을 향해 건축되었다는 특이점이 있다.
- 지리상으로는 캄보디아 북쪽 프레아 비히어르 지역과 태국 시사켓 지역 경계에 위치하며, 아름다운 고원에서 광활한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 갈등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1. 분쟁의 역사적 배경
- 국경 분쟁의 뿌리
태국과 캄보디아의 국경 갈등은 20세기 초 프랑스-시암(태국) 조약(1904년, 1907년)에 따라 양국 국경이 명확히 설정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지도 해석의 차이와 식민지 시대의 불명확한 경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프레아 비히어 사원 문제
- 1962년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캄보디아 프레아 비히어(Preah Vihear) 사원의 소유권을 캄보디아에 인정했다. 그러나 사원 주변 4.6km² 일대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은 지속됐다. 태국은 사원 자체의 소유권은 인정하지만, 인접 지역은 자국 영토라 주장.
- 2008~2011년에는 해당 지역에서 군사적 충돌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양국 군사 간 이견이 반복되어왔다.
2. 최근 교전(2025년 7월) 발발 과정
- 직접적 도화선
- 2025년 5월 28일, 분쟁지역 내 소규모 교전으로 캄보디아 병사 1명이 사망하며 긴장이 촉발됐다.
- 7월 들어, 태국 순찰군이 국경지대에서 지뢰를 밟아 부상당하는 사고가 이어졌고, 태국은 캄보디아가 새 지뢰를 설치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캄보디아는 태국군이 자국 영토를 침범했다고 맞섰다.
- 본격 무력 충돌
- 2025년 7월 24일, 국경 지역(특히 프레아 비히어, 따므안톰 사원 인근)에서 중화기, 로켓포, 전투기가 동원된 대규모 교전이 벌어졌고, 민간인 피해가 크게 발생했다.
- 해당 국경 지역은 양국이 서로 점령하지 않기로 약속한 분쟁지역으로, 병력 배치와 철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긴장이 누적되어 있었다
✦ 2008년, 유네스코 등재가 불러온 총성
2008년, 캄보디아가 사원을 단독으로 세계유산에 등재하자, 태국 내에서는 "영토 주권을 침해당했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이후 양국은 사원 인근에 군을 배치했고,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수차례 무력 충돌이 발생하며, 군인과 민간인 사상자도 나왔습니다.
가장 치열했던 2011년 2월에는 포격전이 벌어졌고, 수천 명의 주민이 피난을 떠나야 했습니다. 국제사회는 양국에 자제를 요청했고, 다시 국제사법재판소가 나서야 했습니다.
✦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개입과 결정
2011년, ICJ는 사원 주변 지역에 병력을 철수하고 비무장 지대를 만들라는 임시 조치를 명령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프레아 비히어 사원 인근 지역 역시 캄보디아 영토라는 해석을 내려 태국의 군사 배치를 사실상 불법으로 판단했습니다.
이 결정은 분쟁을 크게 진정시켰고, 이후 양국은 외교 채널을 통해 문제를 조율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국경선 확정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은 숙제입니다.
✦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닌, 역사와 자존심의 문제
프레아 비히어 사원 분쟁은 단지 땅 몇 평을 두고 벌어진 싸움이 아닙니다. 과거 식민지 지배의 유산, 민족주의적 감정, 국내 정치의 이해관계, 국제법의 해석 차이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어쩌면 이 사원은 양국이 자신들의 정체성과 주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상징적인 전장이었던 셈이죠.
✦ 지금은 평화, 그러나 끝나지 않은 이야기
현재 프레아 비히어 사원은 비교적 관광객의 방문이 가능한 평화로운 장소로 바뀌었고, 양국도 국경에서의 충돌을 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든 역사적 감정이 다시 불붙을 수 있는 민감한 지역인 만큼, 지속적인 대화와 이해가 필요한 상황입니다.